이웃집 토토로(My Neighbor Totoro)

<이웃집토토로>(2019/06/09 : 메가박스분당)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의 여러 영화 중 캐릭터성이 가장 강한 작품을 꼽는다면 대다수가 이 <이웃집 토토로>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88년 등장한 이래 수많은 사람의 동심을 자극해 온 이 숲의 너구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여전히 강한 인기로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안고 있거든요. 아마 이 재개봉 역시 새로운 팬을 모집하기 위한 그런 포교 활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과거 팬이었기 때문에 분명한 ‘부모’와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팬이 될 것이 분명한 그들의 ‘아이’가 나란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습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역시 정말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시대나 세대 등과 상관없이 같은 장악력을 가진다는 진리에 확신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의 여러 영화 중 캐릭터성이 가장 강한 작품을 꼽는다면 대다수가 이 <이웃집 토토로>를 선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88년 등장한 이래 수많은 사람의 동심을 자극해 온 이 숲의 너구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여전히 강한 인기로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안고 있거든요. 아마 이 재개봉 역시 새로운 팬을 모집하기 위한 그런 포교 활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과거 팬이었기 때문에 분명한 ‘부모’와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팬이 될 것이 분명한 그들의 ‘아이’가 나란히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습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역시 정말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시대나 세대 등과 상관없이 같은 장악력을 가진다는 진리에 확신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지브리’ 특유의 주제를 서사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원령공주> 등의 다른 작품군과는 달리 그 속에 인간의 욕망을 녹여내는 작업까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렬한 주제의식이 샘솟지는 않습니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 빈 공간을 철저히 동심으로 채우는 영화거든요. 뭐랄까 어른처럼 보이지 않는, 그러니까 철저하게 아이의 감성에 의해서 기술된 그런 마법 같은 동화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달리는 영화 같다고나 할까. 실제로 크게 자란 성인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묘한 치유의 효과를 경험하는 것 역시 작품에 꽉 찬 ‘동심’ 덕분일 것입니다.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지브리’ 특유의 주제를 서사의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원령공주> 등의 다른 작품군과는 달리 그 속에 인간의 욕망을 녹여내는 작업까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렬한 주제의식이 샘솟지는 않습니다.

이웃집 토토로는 그 빈 공간을 철저히 동심으로 채우는 영화거든요. 뭐랄까 어른처럼 보이지 않는, 그러니까 철저하게 아이의 감성에 의해서 기술된 그런 마법 같은 동화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달리는 영화 같다고나 할까. 실제로 크게 자란 성인 관객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묘한 치유의 효과를 경험하는 것 역시 작품에 꽉 찬 ‘동심’ 덕분일 것입니다.

그것은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거기에 다시 동심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마법을 자연스럽게 교접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화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빈집을 껄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그리운 ‘행동’에 ‘막로쿠로스케’를 발견한 후 당황하는 ‘표정’을 조금의 위화감이나 이물질감 없이 섞어놓는 시각적 재능이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토토로’나 ‘네코버스’ 같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엄마가 부재한 불안한 현실에서 이 아이들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귀여운 캐릭터들은 아이들의 ‘성장’보다는 ‘보호’ 쪽에 중점을 둔 채 존재하고 또 운영되고 있거든요.

그것은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고 거기에 다시 동심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마법을 자연스럽게 교접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화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빈집을 껄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그리운 ‘행동’에 ‘막로쿠로스케’를 발견한 후 당황하는 ‘표정’을 조금의 위화감이나 이물질감 없이 섞어놓는 시각적 재능이 이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토토로’나 ‘네코버스’ 같은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엄마가 부재한 불안한 현실에서 이 아이들을 동심의 세계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귀여운 캐릭터들은 아이들의 ‘성장’보다는 ‘보호’ 쪽에 중점을 둔 채 존재하고 또 운영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섬세하게 세공된 것은 그런 환상적인 공간을 걸으며 느끼는 아이들의 밝은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환상 밖으로 몇 걸음 벗어나 부모를 걱정하는 되살아난 감정에 가깝죠. 결국 전이돼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은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까 꾹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는 사츠키의 마음이나 엄마에게 주기 위해 옥수수를 꼭 껴안고 방향도 모른 채 달리는 메이의 마음 같은 거죠. 비록 이제 더 이상 ‘토토로’를 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놈들이 보여준 그 마음만은 우리도 여전히 움켜쥔 채 살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것이 우리가 ‘사츠키’나 ‘메이’가 바라보는 풍경을 이렇게 화면만이라도 몰래 곁눈질하려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섬세하게 세공된 것은 그런 환상적인 공간을 걸으며 느끼는 아이들의 밝은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환상 밖으로 몇 걸음 벗어나 부모를 걱정하는 되살아난 감정에 가깝죠. 결국 전이돼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것은 엄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까 꾹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는 사츠키의 마음이나 엄마에게 주기 위해 옥수수를 꼭 껴안고 방향도 모른 채 달리는 메이의 마음 같은 거죠. 비록 이제 더 이상 ‘토토로’를 볼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놈들이 보여준 그 마음만은 우리도 여전히 움켜쥔 채 살고 있으니까요. 물론 그것이 우리가 ‘사츠키’나 ‘메이’가 바라보는 풍경을 이렇게 화면만이라도 몰래 곁눈질하려는 이유이기도 하겠죠.

이웃집 토토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히다카 노리코, 사카모토 치카, 다카기 히토시 공개 2001.07.28. / 2019.06.06. 재개봉

이웃집 토토로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출연 히다카 노리코, 사카모토 치카, 다카기 히토시 공개 2001.07.28. / 2019.06.06. 재개봉